지금까지 신라의 정치무대는 왕경이었고 지배세력은 중앙의 진골귀족이나 6두품에 한하였으며 지방에서는 중앙집권력의 침투로 독자적인 세력이 성장할 수 없었다. 신라 하대에 중앙귀족이 분열하여 항쟁하고 지방에 반란이 일어날 때에 이 사회 모순을 모색하고 있었던 계층은 육두품세력이었다.

 

그러나 골품제와 관련된 이들의 불만은 그들 자신 역시 기생하는 지배층의 일부였기 때문에 현실 비교 소극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행동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골품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집단은 지방에서 새로이 대두한 호족세력일 수 고 밖에 없었다.

 

신라하대의 혼란 즉 중앙에서의 왕위쟁탈전의 전개는 중이 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統制力)의 약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가뭄과 기근, 그리고 방만한 재정운영에서 야기된 농민생활의 궁핍은 중앙세력에서 소외되었지만 꾸준히 성장해 온 지방의 유력자들에게는 그들의 정치적 비중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들 지방세력은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립하고 그 지방의 백성들을 지배하였다. 이들은 스스로 성주(城主), 또는 장군(將軍)이라 칭한면서 군사력을 가지고 지방의 행정을 장악 하고 조세 역역을 징수 하였다.

 

이리하여 이들 호족은 지방의 막대한 농장과 사병을 배경으로 독자적 세력권을 형성하고 과 거에 지방행정에 참여한 경험을 살려 신라 중앙제도를 모방하여 새로운 관반체제(官班體制)를 이룩하기도 이 방호족들은 종래의 군현을 대신하여 그 지방을 지 가 되었으며, 진골체제를 해체하고 신라왕조를 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대체로 호족이라고 불리는 이들 지방시 은 그 출신과 성장과정에 따라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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